21세기 들어 보편화된 디지털 영상 기술은 영화 미학, 영화 창작 방식, 관객의 영화 체험 등 영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컴퓨터를 이용해 이미지를 가공하는 ‘디지털 후반작업’이 통상적 제작 과정으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리얼리즘적 매체라는 오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화는 처음 발명되었을 때부터 놀라운 현실 재현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카메라의 셔터가 작동하면 피사체의 이미지가 필름에 새겨진다. 필름 표면에 각인된 이미지는 영화가 촬영되는 순간에 영화 속 인물, 사물, 공간이 실제로 카메라 앞에 존재했음을 확인해 준다.1 따라서 영화는 하나의 기록이자 증언으로 인식되었다. ㉠ 지가 베르토프는 역동적인 현실 세계를 회화나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영화의 리얼리즘적 역량을 ‘영화-눈’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영화-눈’이 인간의 지각을 확장하여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총체적인 인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필름 영화와 달리 디지털 영화에서는 현실과 영화 이미지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느슨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영화에서 이미지는 0과 1의 이산적인 전자 정보로 저장되며, 이 정보들은 디지털 후반작업 과정에서 변형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가상의 인물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 레프 마노비치는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영화-눈’의 시대가 지나가고 ‘영화-붓’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다.2 그는 현실의 사실적 재현을 넘어 상상의 세계를 그려 내는, 이른바 ‘합성 리얼리즘’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영화는 사진보다 회화나 애니메이션에 더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변형되고 가공된 디지털 이미지가 오히려 영화의 사실적인 느낌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 스티븐 프린스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공된 이미지를 관객이 사실적이라고 인식하는 ‘트루 라이즈’, 즉 ‘진짜 거짓말’ 현상을 ‘지각적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한다.3 그는 영화가 보여 주는 대상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한 ‘사진적 리얼리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인위적으로 변형된 이미지에서 더 강한 사실감을 느끼는 관객의 심리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영화에서 관객이 보는 것은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가 아니라, 지각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어 스크린에 투사된 이미지이다. 따라서 필름 영화의 이미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디지털 이미지의 실재성 문제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